
좌담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대한민국 청년층이 처한 현실을 진단한 후 이를 초래하는 제도·시스템의 맹점, 기성세대의 반성과 지원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6부. 전문가 좌담 - ② 사회·문화·노동분야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주도성장론, 최저임금 인상 등이 전방위적으로 추진됐다. 그런데도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청년층은 공시(公試)에만 목을 매고 있다. 성장의 핵심동력인 불도저 같은 도전·창업 정신은 실종됐다. 사회 전반의 갑질 논란 속에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한다는 좌절감만 팽배하다. 2%대의 낮은 성장으로는 고용, 근로조건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의 정착을 유도하고 청년층, 미래세대가 희망을 품고 밝은 대한민국의 착근을 유도할 기폭제, 전환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모두가 숙고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다. 문화일보는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사옥에서 청년과 장년을 아우르는 전문가 4인과 함께 이에 대한 구조적 원인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했다.
좌담 : 윤희숙 KDIS 교수,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송보희 한국청년정책학회 회장, 백경훈 청년이 여는 미래 대표
사회 : 이민종 사회부 부장
―갑질 논란에 대한 젊은층의 실망감, 분노가 크다.
△송보희 = 일부 기득권층이 마치 법 위에 군림하는 듯한 느낌이다. 높은 취업의 벽에 부닥쳐 좌절하며 “나는 왜 맨날 떨어지나?” 자괴감이 든다고들 말한다. 갑질이 제대로 단죄되지 않으면서 좌절감, 분노까지 표출한다. 정의, 신뢰와 거리가 먼 일들이 반복되면 사회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만 모든 기업의 문제는 아닌 만큼 무분별하게 직원, 가족까지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아 자중지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잘못한 이는 정확히 처벌을 받고 노력한 이는 그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청년층은 느끼고 있다.
△이정민 = 갑질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시스템화가 필요하다. 자극적인 게 하나 나오면 그다음에 세무조사부터 온갖 공권력이 개입하는 절차를 밟는데 그러다 보면 일각에서는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버텨보자는 심리도 나온다. 평상시에 왜 점검하지 못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반복돼서는 곤란하다.
△윤희숙 = 개인과 시스템을 분리해야 한다. 한 갑질 사안이 누구를 얼마나 분노하게 했는지가 아니라 행위에 대해서만 원칙을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 온 사회가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분노하면서 정도 이상으로 법치(法治)가 과도하게 파고들 여지가 생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다’는 평가도 한다. 난제를 풀기 위해 우선 청년층에 폭넓은 일자리를 줘야 할 텐데.
△백경훈 = 어디든 비전이 보여야 한다. 중소기업에 가더라도 ‘이동 사다리’가 있다면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중소기업에 한번 들어가면 만년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그러다 보니 공기업, 공무원 준비하는 게 일반적인 프로세스가 됐다. 그러다 안되면 중소기업에 가겠다는 것인데, 취업유예·졸업유예로 이어져 취업시장 진입도, 결혼도, 출산도 늦어진다. 국가 성장률까지 영향을 받는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도 없이 일단 중소기업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너무 단기적이고 잔인하다.
△송 = 현재 청년들은 주체적이고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 세대다. 도전, 혁신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 모든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게 문제다. 혁신과 분배 등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는 다양성을 담보해야 한다. 일자리가 많은데 청년들이 가지 않는다고 하면 이들은 매우 억울할 것이다. 갈 만한 곳이 없다. 이 직업을 발판으로 10∼20년을 살아야 하는데 전혀 배울 게 없는 곳을 선택하라고 강요할 순 없는 것 아닌가. 단순히 취업률만 올리는 방향은 옳지 않다. 나한테 도움이 된다면 중소기업이라도 알아서 찾아가지 않겠나.
△윤 = 좁은 해외취업도 일종의 ‘돌파구’로 제시하는데 성과지표를 높이기 위해 청년층을 유도하는 것 외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세계 어느 나라나 시장이 어려워지면 젊은이들이 위험을 덜 감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모두 비전 있고 더 활력 있고 임금도 높으며, 해고되지 않거나 성과가 좋지 않아도 아무 ‘제재’를 받지 않는 안정성, 비전,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교직에 가거나 하급공무원을 하겠다고 줄을 서는 건 비정상이다. 시스템 자체가 재능이 제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공공부문 강화는 역동성을 줄이고 있다.
△이 = 우리가 재능을 잘못 유도하고 있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과거에는 석탄학과가 최고의 학과일 때도 있었고 석유화학, 컴퓨터공학과 등 재능이 그런 방향으로 흘렀다. 대부분 의사, 로스쿨, 공무원에 대한 꿈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국가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나라가 먹고살 게 없을 것이란 측면에서 암울하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고용을 끌어올리는 마중물로 삼겠다고 했고 1년 동안 추진했다.
△윤 = 스웨덴 모델을 많이 고려한 것 같다. 공공부문 비중이 높아도 잘 먹고 잘사는 그런 구상을 지닌 이들이 현 정권의 대선캠프에 많이 있었던 듯싶다. 하지만 스웨덴의 경제정책은 혁신적이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시장의 혁신을 살려주고 공공부문과의 균형, 역할을 절묘하게 찾고 있다. (우리처럼) 시장을 죽이면서까지 ‘퍼블릭 섹터’를 도모하려는 건 해로운 일이다. 제일 건강하지 못한 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탄받지 않을 직종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젊은 친구들이 그쪽으로 몰리고 있다. 앞으론 쉽게 말해 호봉표가 있는 직종은 다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게 보장돼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그런 시스템을 소중히 보존하는 게 문제다.
△백 = 민간시장의 일자리, 임금이 줄고 어려워지는데 공공부문, 공기업은 자꾸 더 만들고 복지 혜택을 유지하면 위화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일자리 문제에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장기적 과제일 텐데 공공부문만 양적으로 확대한다는 건 좋지 않다. 공정하지 못한 노동시장 단면을 국가가 만드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다양성의 확대는 젊은 층에 긴요하고도 중요한 화두일 텐데.
△송 = 30대 초반, 20대, 고등, 초등학생들 모두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중학교,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을 들어보면 조향사, 성우, 유튜버 등 특이한 직업이 많다. 그런데 앉아서 공부만 하고 진학하고 대학을 선택하면 이후 공무원 하려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 같다. 획일적 사회문화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느낀다. 부가가치가 있는 것은 대기업에 버금가게 만들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야 한다. 기성세대도 깨어나야 한다.
△백 = ‘방탄소년단’ 신드롬이 좋은 예다. 기존 기준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프로세스를 거쳐 왔다. 대형기획사도 아니고 처음부터 미국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었지만, 외국엔 없는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SNS를 영리하게 활용해 성공했다. 드라마나 K-팝도 정부 지원이 아니라 지하 골방, 연습실에서 혁신을 만들었다. 그러나 교육정책의 한계로 교실에서부터 이런 에너지 분출을 막고 있다.
△윤 = 한 줄로 서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고, 사회가 그걸 개인에게 강요한다는 느낌이 든다. 기성세대 범위보다 젊은 세대는 넓고 다양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기성세대에게 강요당하길 싫어한다. 기존세대가 당연시했던 걸 강요하면 돈만 들고 강요당하는 처지에선 싫어하고 실제 효과도 없다. 기술 때문에 세대 간 거리가 빨리 벌어지고 있다.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시스템으로 재능을 풀어내기 위해선 열린 시스템이 돼야 한다. 과학기술의 변화를 따라가려면 더 빨리 개방돼야 한다.
△이 = 예컨대 교육 문제만 해도 정말 어려운 분야다. 자칫 아이가 부모를 원망할 수도 있다. 이전 세대는 이후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은 소통이 안 되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젊은 세대의 통일관은 어떤가.
△백 = 남북 주민들 간의 인식, 생활문화에서 다양한 양태가 있고 그 격차는 굉장히 심하다. 아예 ‘문명’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질감 극복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젊은 층으로 갈수록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면이 존재한다. 통일을 바라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는 것 같다. 한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은 설득력이 없다. 새로운 명분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핵을 쏘지 않으면 이대로 지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존재한다.
△송 = 요즘 청년들은 누구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다. 경제 격차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더 필요하다. 통일과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청년들에게는 사치이기도 하다.
△윤 = 자기를 둘러싼 편익과 비용을 계산하는 건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가치가 있다. 그걸 같이 강조하게 하는 건 리더의 역할이다. 그런 문제를 강력히 제기해 논의하는 건 중요한 역할이다. 백 대표가 말한 것처럼 꺼내놓고 얘기해야 답답한 점이 해소될 수 있다. 장단점, 공동체 신뢰의 면면 등을 얘기해야 한다. 지금은 그런 과정이 배제된 것 같다.
△이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의식조사를 보면 젊은 층에서 통일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떨어진다. 실제로 통일 비용을 본인들이 많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득은 눈에 없고 비용은 보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젊은이들이 신선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한국사회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 = 고리타분하겠지만 자기 역량을 키우는 걸 게을리하면 안 된다. 어느 때보다 전문가가 많이 필요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비교우위’를 지닌 전문적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게끔 말이다. 기성세대는 제도를 만들고 지원도 해줘야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백 = 일자리도 교육도 혁명적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권력을 지닌 정치인들이 어떤 사고를 하고 끌고 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50년간 사회·경제 발전을 이뤄냈지만, 앞으로 50년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송 = 핵심 키워드는 희망이다. 희망은 잘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뜻한다. 도전하고 미래를 위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타인, 사회, 국가에 대한 희망을 품었을 때 상호 발전할 수 있는 모습이 구현될 것이다.
△윤 = 제일 근본적인 변화는 규칙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1980∼1990년대 초 노동시장에 진입했던 세대는 ‘성장률 10% 세대’로 기회 자체가 많았다. 지금 2∼3% 시대에서는 기회가 엄청나게 줄었고 갈 곳이 없다. 세대 간 갈등이 배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규칙을 바꿀 수밖에 없다. 일자리는 줄었고 이미 들어간 사람은 저성과자라 해도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 시스템이다. 이를 유지한다면 젊은 세대는 들어갈 곳이 없다. 기성세대가 본인들만 힘들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서로의 사정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20년 후 대한민국의 모습을 가정해 본다면.
△송 = 긍정적으로 대한민국사회가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저력이 있지 않나.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살기 좋고, 여유도 가지면서 경쟁도, 성장도 하며 나만의 꿈을 찾는 청소년들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후배나 미래세대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 = 인공지능(AI) 책을 자주 봐서 그런지,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 같다. 자율주행 차도 다니고…. 이스라엘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 유발 하라리가 내다봤듯 지금 아이들이 배우는 것들이 사회에서 전혀 쓸모없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평생직장도 사라지고 이직의 시대가 열리면서 전혀 다른 고용시장도 열려 있을 것이다.
△이 = 정치인이 많이 물갈이돼 있을 것 같다. 정당에서 정치권력을 승계하던 사람이 많이 은퇴하고 정치가 좀 더 깨끗해지고 제대로 잘 돌아가는 사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정도 세대교체는 되지 않을까 싶다.
△윤 =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바람의 마찰 및 갈등이 줄어들 듯싶다. 다양성, 자기 리듬과 개인 내면을 중시하는 흐름이 시작될 것 같다.
horizon@, 정리 = 김기윤 기자 cesc3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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